글디(글 쓰는 DJ)와 글재보(글 쓰는 재즈 보컬리스트)가 만나 완성된 한 권의 책 같은 음악 <어쩌다 어른>. 뮤지션과 칼럼니스트라는 다소 이질적인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두 명의 목소리 장인과 명품 연주자들이 만나 매력적인 음악을 탄생시켰다. 단지 제목과 연주인들만 있으면 되고 음악 스스로 말을 할 뿐이라는 존 콜트레인의 말처럼, <어쩌다 어른>은 듣는 순간 이미 긴 말이 필요 없어진다. 감수성 풍부한 피아노와 남예지의 보컬에 이어 진한 서정성을 담은 래피의 읖조리는 듯한 랩은 어느새 풍부한 상상력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담은 가사와 혼연 일체가 되어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인생론이 있다. 한 곳에 머물며 현재의 상황을 소중히 여기는 유형과 적극적으로 환경을 바꾸어 가며 넓은 세계를 경험하려는 유형이 그것이다. 적어도 남예지와 래피는 후자에 속하는 뮤지션임에 틀림없다. 루이 암스트롱의 말처럼 그들에게 절대 장르는 중요치 않다. 세상을 멋지게 만드는 건 음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 장미는 그 자신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는다. <어쩌다 어른>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보통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걱정하거나 불안해하곤 한다. 남예지와 래피가 이 노래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수많은 실패와 좌절 앞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주체로서 사유하고 행동하는 어른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노래하는 것 자체만으로 평온한 기쁨 속에 있다.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는 “우주는 원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스토리텔러다. 이야기 없이는 우리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 <어쩌다 어른>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