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의 끝.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 Tagtraume ]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가던 길을 멈추자 세상의 실체는 사라지고 오로지 음악에, 그들이 만들어 낸 환상에 휩싸일 것이다. 몇 개월 전, 이 앨범에 담긴 몇 몇 곡을 들어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때의 날씨와 전후 상황을 또렷이 기억한다. 음악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완전히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국에서 이런 음악이? 라는 탄식 비슷한 것이 나왔다. 모든 문화가 그것이 속해있는 환경과 토대에서 우러나온다고 했을 때, 국카스텐의 신곡들은 그런 전제에서 벗어나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들이 걸어온 길은 드라마틱했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헬로루키 오브 더 이어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이윽고 발매된 데뷔 앨범 역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앨범보다는 라이브에서 진가를 드러낸다는 자타공인의 평답게, 펜타포트와 지산밸리록페스티벌 등 국내 주요 페스티벌을 ‘올 킬’했으며 TV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날이면 검색어 1위는 그들의 몫이 됐다. 승승장구였다. 하지만 외부 상황은, 즉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밴드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주류 음악계에서 록은 소외되고, 인디 음악계도 연성화되고 있는 게 국카스텐의 여정 바깥에 있는 현실인 셈이다. 즉, 이른바 대중성 또는 상업성에 대한 고민과 유혹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택한 방법론은 정반대다. 다른 요소들은 배재하고, 오직 자신들의 음악적 욕망에 집중하고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그 욕망은 응고, 그리고 팽창되어 [Tagtraume](백일몽, 낮에 꾸는 꿈)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국카스텐은 '이미지적인 음악'을 추구한다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그런 지향점은 1집의 여러 가사에서 잘 드러났다. 몽상에서 연유한 이야기들이 앨범을 채웠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카스텐을 특정 장르로 묶기 곤란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장르의 완성이 아니라 내면의 표출이 그들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도 마찬가지다. 아니, 한층 심화되었다. 국카스텐의 기존 필살기는 기타와 보컬의 융합에 있었다. 동시대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결코 꿀리지 않을 두 실력있는 뮤지션이 빚어내는 폭발이야 말로 그들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국카스텐은 이번 EP를 통해 그 융합을 물리적인 것에서 화학적인 단계로 끌어올린다. 탁월한 연주와 가창의 조합이 보다 다채로워진 구성안에 녹아들면서 발생하는 이미지가 두 신곡들에 고루 배어있는 것이다. 이는 1집 작업 때와는 달리 베이스와 드럼이 모두 편곡 및 레코딩에 참여했기 때문에 얻어진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들이 밴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립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를 바탕으로 밴드는 현실의 상황과 감성을 묘사하는 걸 넘어 비현실적 이미지를 쌓아 올린다. 일상의 스케치가 지배하는 음악계에 던져진, 환상에 대한 임상기록이다. `매니큐어`와 `붉은 밭`은 각각 일렉트로니카 버전과 어쿠스틱 버전으로 재편곡됐다. `붉은 밭`의 어쿠스틱 버전은, 보통 부록처럼 실리는 어쿠스틱 편곡의 상식을 뒤엎는다. 보통 밴드의 어쿠스틱 버전이란 보다 무난한 감상용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국카스텐은 오히려 원곡을 해체하고 재조합한다. 오리지널 버전이 극적 폭발을 지향한다면, 어쿠스틱 버전에서는 통기타를 가지고도 충분한 사이키델릭을 보여줄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매니큐어`의 일렉트로닉 믹스도 마찬가지다. 이 버전은 댄스 플로어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기타, 베이스, 드럼 말고도 디지털이라는 무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견본에 가깝다. 이 두 개의 리믹스를 통해서 국카스텐은 선언하고 있다. 언젠가 발매될 2집에서 또 한번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서포모어 징크스 같은 건 남의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Tagtraume]는 그 선언에 대한 짧고, 강렬하고, 인상적이며, 믿음직한 보증서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