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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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POP⟫, 레트로 스타일 아닌 레트로 자신이 된 음악 잠깐의 유행인가 싶었던 레트로는 몇 해가 지나도 꺼질 줄을 모른다. 세기말 패션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하고 바이닐에 이어 카세트 테이프가 등장한다. 충전이 필요 없는 유선 이어폰에 와이파이가 필요 없는 MP3 플레이어는 힙스터들의 잇템으로 등극하고 홈 비디오 풍의 뮤직비디오와 80-90년대를 수놓던 장르의 음악들이 새록새록 들려온다. 음악으로서의 레트로는 무엇일까? 대형 기획사가 세심하게 만들어낸 아이돌 틴에이저들이 부르는 ‘스타일'이 아니라 90년대에 처음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선보였던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시간을 건너 기어이 다시 시작한 음악에서 이야기하는 레트로라는 것은? 김석준의 세 번째 앨범 ⟪POP⟫ 이야기다. 1993년, 쟁쟁한 뮤지션들을 대거 배출하여 전설이 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5회에 금상을 받았던 그는 하나음악이 냈던 신인들의 음반 ⟪New face⟫에 <하루 종일>과 <구파발> 단 두 곡을 발표했다. 그의 담백한 보컬과 아티스트의 지문이 뚜렷하게 보이는 노래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나는, 그의 앨범을 오래, 아주 오래 기다렸다. 무려 20여년이 지나 기어이 도착한 첫 EP ⟪나의 이름은⟫ 소식은 2020년에 들려왔다. 그러고는 봇물 터지듯 싱글과 EP, 앨범들이 촘촘하게 쏟아져 나왔다. 긴 시간 동안 참았던 소리가 터져 나오듯, 몇 해에 걸쳐 할 법한 이런저런 시도들이 불쑥불쑥 돋아나는 소리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정규 앨범 ⟪POP⟫이다. 레트로의 대상이 되는 시기를 선세대를 통해, 미디어를 통해 접한 것이 아닌, 직접 살아낸 아티스트에게 레트로는 무엇일까. 처음 이 앨범을 플레이시키며 내가 마주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향수'라는 손쉬운 답은 어쩐지 아닌 것 같았다. 각종 재난과 IMF를 관통하던 시절,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세련되고 작은 음악들이 자리를 키워 가고 ‘오버그라운드'에서는 풍요로움에서 갑작스런 추락으로, 현란한 미러볼과 어둑한 바의 쓴 술잔을 휘감는 화려한 음악들이 넘쳐나던 때. 레트로를 추억(retrospect)하기 위해 꺼내야 하는 것들은 유튜브 화면 위를 미끄러져가는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낸 젊음의 덜컹이는 구체적 기억이었을 것이다. 우선 그는 자신의 음성을, 그 사랑받던 보컬을 소거시켰다. 전체 트랙에 저마다 다른 객원 보컬들을 세웠다. 어쩌면 익숙한 방식.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와 015B, Toy에서 겪었던 방식이다. 그래서 얻는 것은? 아마도 자유. 어떤 이야기도 하나의 보컬로, 톤으로, 자아로 수렴되지 않는 자유. 다른 음성, 다른 성별, 다른 세대, 다른 장르, 다른 화자를 세울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그렇게 그는 신스팝에서 디스코, 시티팝과 모던록, 트롯과 발라드를 종횡무진 오간다. 그런데 이런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그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시공과 정서가 핵심이다. 음반을 여는 첫 곡은 연주곡이다. 신디사이저와 바이올린, 트럼펫과 기타가 뒤섞이는 가운데 네온사인이 점멸하는 도시의 밤길을 질주한다. 영화 ⟪비트⟫의 풍경이 떠오른다. “누구라도 여기 선 넘지 말라는 경고등”(보통의 거리)을 깜빡이는 서늘한 도시이다. 그곳에서는 다정했던 순간도 언제인가 싶게 사라진다. “너만 즐거운 재미없는 숨바꼭질 놀이”(숨바꼭질)를 일삼는 건 그이기도, 그녀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에겐 따뜻한 발라드의 시절이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모르던 시절, “위를 봐도 네가 보이고 뒤돌아 길을 가도 네가 들리고” 하던 <짝사랑>의 시절. 살랑거리는 바람 선명한 햇빛이 쏟아지는 초여름, 막 시작된 사랑의 청춘은 경쾌함으로 가득하다. 퐁당, 살짝, 사뿐(들어 봐 봐), 하나같이 가볍고 보드랍고 반짝이는 이미지들이 쏟아진다. 사랑의 순간이 아닌 일상의 초여름 도시는 공사장 소리, 경적 소리 속 라디오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는 차창 밖 풍경에 담긴다. “혼자 하는 Drive”(Drive alone)를 즐기는, “이 정도라면 괜찮은거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일상이다. 별안간 들려오는 비음이 섞인 여성 화자의 목소리, “오빠 내게 뭐랬니? 말만 하라 했잖아. 하늘의 별도 따준다면서”(나는 어떡해) 원망을 하는 목소리인데 어딘지 익살스럽다. 트로트라 주장하지만 그것에 뭔가가 더해진, 어쩐지 피식 웃게 되는 장면이다. 그러고는 별안간 저음의 첼로가 이끄는 연주곡. 연극의 한 막이 끝나고 전환되는 장면,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에 실린 나즈막한 독백이 들려온다.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미련한 난 몇 번이고 너의 화단을 봐”(너에게 가까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쓸쓸해진 마음이다. 이런 소박한 방식의 독백, 그 시절 낯익은 ‘언더그라운드'의 방식이다. 그러고는 스트링 음색이 진한 디스코(외출)가 들려온다. 그 시절 ‘오버그라운드' 방식으로, 휘청이는, 흔들리는 클럽 미러볼 아래다. 도피처가 된 음악이 가득한 밤이다. 정감 넘치는 록 넘버 <소풍>은 그 자체로 지금은 묻혀져 가는 단어 ‘소풍'을 소환한다. “소풍을 가야겠네 좋은 것만 담아”(소풍) 떠나야겠다고 결심하는 마음, 요즘 아이들의 ‘현장 학습'도 아니고, 어른들의 ‘여행'도 아닌, 여리고 작고 설레는 떠남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른다. 흔들리고 따뜻하고 설레이고 쓸쓸하고 만나고 헤어지고를 지나 도착한 마지막은 더 이상 그 시절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에는 칼바람”(얼음 위에 서다) 앞에서는 나긋한 추억을 되새길 수 없다. “이미 진 시간은 내 사랑한 이들을 앗아가”버렸기 때문에. 덜컹이는 회고(retrospect)의 끝은 차가운 현실이고, 얼음 위에 선 채로도 “이 얼음을 꽉 단단히 발가락 힘주고 한걸음”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어떤 시절을 향해 있는 눈길은 그래서 스타일이 아니다. 온몸으로, 온 시간으로 추억과 회고를 통해 오늘로 돌아오는, 어제를 떠나버릴 수 없는, 어제와 오늘이 뒤엉킨 김석준의 음악은 레트로 자신이 된다. 그의 어제에, 돌아온 오늘에 작은 응원을 부친다. 2024년 9월 신영선 [Album Credits] Words & Music: 김석준 (*외출 Co-Words: 차은주) Directing & Arrangement: 김준오, 신석철, 이규호, 김정렬, 박용준 Featuring: 지호, EJ Park, 도예은, Heewon, 차은주, 선다, 이한철, 이규호 Drums: 신석철 Bass: 윤주순, 김정욱, 김정렬 Guitars: 김준오, 이성렬 Piano, Keyboards & Synth: 장효중, 박찬, 문수희, 박용준 Violin: 김수진 Trumpet: 이유신 Cello: 박소현 Add-on Chorus: 초빈, 유은, 조영서 Engineer: 임정민, 이소림, 박준형, 이종학, 이동헌, 김용민, Alex Y. Sok, 유한빈, 오정석, 서형석, 전영준 CD Distribution: 미러볼뮤직 Online Channel: 라이브콘티넨트 CD Artwork & Design: w.lily Special Thanks To 조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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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 1730044800000

김석준 ⟪POP⟫, 레트로 스타일 아닌 레트로 자신이 된 음악 잠깐의 유행인가 싶었던 레트로는 몇 해가 지나도 꺼질 줄을 모른다. 세기말 패션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하고 바이닐에 이어 카세트 테이프가 등장한다. 충전이 필요 없는 유선 이어폰에 와이파이가 필요 없는 MP3 플레이어는 힙스터들의 잇템으로 등극하고 홈 비디오 풍의 뮤직비디오와 80-90년대를 수놓던 장르의 음악들이 새록새록 들려온다. 음악으로서의 레트로는 무엇일까? 대형 기획사가 세심하게 만들어낸 아이돌 틴에이저들이 부르는 ‘스타일'이 아니라 90년대에 처음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선보였던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시간을 건너 기어이 다시 시작한 음악에서 이야기하는 레트로라는 것은? 김석준의 세 번째 앨범 ⟪POP⟫ 이야기다. 1993년, 쟁쟁한 뮤지션들을 대거 배출하여 전설이 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5회에 금상을 받았던 그는 하나음악이 냈던 신인들의 음반 ⟪New face⟫에 <하루 종일>과 <구파발> 단 두 곡을 발표했다. 그의 담백한 보컬과 아티스트의 지문이 뚜렷하게 보이는 노래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나는, 그의 앨범을 오래, 아주 오래 기다렸다. 무려 20여년이 지나 기어이 도착한 첫 EP ⟪나의 이름은⟫ 소식은 2020년에 들려왔다. 그러고는 봇물 터지듯 싱글과 EP, 앨범들이 촘촘하게 쏟아져 나왔다. 긴 시간 동안 참았던 소리가 터져 나오듯, 몇 해에 걸쳐 할 법한 이런저런 시도들이 불쑥불쑥 돋아나는 소리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정규 앨범 ⟪POP⟫이다. 레트로의 대상이 되는 시기를 선세대를 통해, 미디어를 통해 접한 것이 아닌, 직접 살아낸 아티스트에게 레트로는 무엇일까. 처음 이 앨범을 플레이시키며 내가 마주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향수'라는 손쉬운 답은 어쩐지 아닌 것 같았다. 각종 재난과 IMF를 관통하던 시절,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세련되고 작은 음악들이 자리를 키워 가고 ‘오버그라운드'에서는 풍요로움에서 갑작스런 추락으로, 현란한 미러볼과 어둑한 바의 쓴 술잔을 휘감는 화려한 음악들이 넘쳐나던 때. 레트로를 추억(retrospect)하기 위해 꺼내야 하는 것들은 유튜브 화면 위를 미끄러져가는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낸 젊음의 덜컹이는 구체적 기억이었을 것이다. 우선 그는 자신의 음성을, 그 사랑받던 보컬을 소거시켰다. 전체 트랙에 저마다 다른 객원 보컬들을 세웠다. 어쩌면 익숙한 방식.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와 015B, Toy에서 겪었던 방식이다. 그래서 얻는 것은? 아마도 자유. 어떤 이야기도 하나의 보컬로, 톤으로, 자아로 수렴되지 않는 자유. 다른 음성, 다른 성별, 다른 세대, 다른 장르, 다른 화자를 세울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그렇게 그는 신스팝에서 디스코, 시티팝과 모던록, 트롯과 발라드를 종횡무진 오간다. 그런데 이런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그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시공과 정서가 핵심이다. 음반을 여는 첫 곡은 연주곡이다. 신디사이저와 바이올린, 트럼펫과 기타가 뒤섞이는 가운데 네온사인이 점멸하는 도시의 밤길을 질주한다. 영화 ⟪비트⟫의 풍경이 떠오른다. “누구라도 여기 선 넘지 말라는 경고등”(보통의 거리)을 깜빡이는 서늘한 도시이다. 그곳에서는 다정했던 순간도 언제인가 싶게 사라진다. “너만 즐거운 재미없는 숨바꼭질 놀이”(숨바꼭질)를 일삼는 건 그이기도, 그녀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에겐 따뜻한 발라드의 시절이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모르던 시절, “위를 봐도 네가 보이고 뒤돌아 길을 가도 네가 들리고” 하던 <짝사랑>의 시절. 살랑거리는 바람 선명한 햇빛이 쏟아지는 초여름, 막 시작된 사랑의 청춘은 경쾌함으로 가득하다. 퐁당, 살짝, 사뿐(들어 봐 봐), 하나같이 가볍고 보드랍고 반짝이는 이미지들이 쏟아진다. 사랑의 순간이 아닌 일상의 초여름 도시는 공사장 소리, 경적 소리 속 라디오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는 차창 밖 풍경에 담긴다. “혼자 하는 Drive”(Drive alone)를 즐기는, “이 정도라면 괜찮은거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일상이다. 별안간 들려오는 비음이 섞인 여성 화자의 목소리, “오빠 내게 뭐랬니? 말만 하라 했잖아. 하늘의 별도 따준다면서”(나는 어떡해) 원망을 하는 목소리인데 어딘지 익살스럽다. 트로트라 주장하지만 그것에 뭔가가 더해진, 어쩐지 피식 웃게 되는 장면이다. 그러고는 별안간 저음의 첼로가 이끄는 연주곡. 연극의 한 막이 끝나고 전환되는 장면,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에 실린 나즈막한 독백이 들려온다.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미련한 난 몇 번이고 너의 화단을 봐”(너에게 가까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쓸쓸해진 마음이다. 이런 소박한 방식의 독백, 그 시절 낯익은 ‘언더그라운드'의 방식이다. 그러고는 스트링 음색이 진한 디스코(외출)가 들려온다. 그 시절 ‘오버그라운드' 방식으로, 휘청이는, 흔들리는 클럽 미러볼 아래다. 도피처가 된 음악이 가득한 밤이다. 정감 넘치는 록 넘버 <소풍>은 그 자체로 지금은 묻혀져 가는 단어 ‘소풍'을 소환한다. “소풍을 가야겠네 좋은 것만 담아”(소풍) 떠나야겠다고 결심하는 마음, 요즘 아이들의 ‘현장 학습'도 아니고, 어른들의 ‘여행'도 아닌, 여리고 작고 설레는 떠남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른다. 흔들리고 따뜻하고 설레이고 쓸쓸하고 만나고 헤어지고를 지나 도착한 마지막은 더 이상 그 시절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에는 칼바람”(얼음 위에 서다) 앞에서는 나긋한 추억을 되새길 수 없다. “이미 진 시간은 내 사랑한 이들을 앗아가”버렸기 때문에. 덜컹이는 회고(retrospect)의 끝은 차가운 현실이고, 얼음 위에 선 채로도 “이 얼음을 꽉 단단히 발가락 힘주고 한걸음”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어떤 시절을 향해 있는 눈길은 그래서 스타일이 아니다. 온몸으로, 온 시간으로 추억과 회고를 통해 오늘로 돌아오는, 어제를 떠나버릴 수 없는, 어제와 오늘이 뒤엉킨 김석준의 음악은 레트로 자신이 된다. 그의 어제에, 돌아온 오늘에 작은 응원을 부친다. 2024년 9월 신영선 [Album Credits] Words & Music: 김석준 (*외출 Co-Words: 차은주) Directing & Arrangement: 김준오, 신석철, 이규호, 김정렬, 박용준 Featuring: 지호, EJ Park, 도예은, Heewon, 차은주, 선다, 이한철, 이규호 Drums: 신석철 Bass: 윤주순, 김정욱, 김정렬 Guitars: 김준오, 이성렬 Piano, Keyboards & Synth: 장효중, 박찬, 문수희, 박용준 Violin: 김수진 Trumpet: 이유신 Cello: 박소현 Add-on Chorus: 초빈, 유은, 조영서 Engineer: 임정민, 이소림, 박준형, 이종학, 이동헌, 김용민, Alex Y. Sok, 유한빈, 오정석, 서형석, 전영준 CD Distribution: 미러볼뮤직 Online Channel: 라이브콘티넨트 CD Artwork & Design: w.lily Special Thanks To 조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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