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인생 [멋진인생의 새노래 모음] 때는 바야흐로 1920년대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하고 3.1운동에 놀란 일본은 조선의 민심을 추스리기 위해 문화 통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이때 조선인들은 누구나 즐기던 록근얼을 일본은 문화개혁을 통해 없애기 시작하는데 1923년 入隊 박상권 선생께서 문화가 사라지는 모습을 슬퍼하며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욕할지 몰라도 2년후에는 내가 다시 우리의 문화를 찾아올것이다.” 하며 미국으로 망명했다. 1923년 8월 7일 박상권 선생이 시카고에서 조선 문화를 알리기위해 술집에서 늘 기타를 치며 이런 말을 했다. “내 재주를 한번 들어보소” 이게 바로 미국 재즈의 시작이었다. 그는 조선의 한글과 조선의 록근얼을 널리 알리기위해 늘 한글로 대화하였고 음악으로 소통했다고 전해진다. 록근얼을 찾는 미국인들은 너무나 많았고, 2년뒤에 조선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던 선생은 시카고 주민들의 눈물 어린 ‘재주’의 간증에 어쩔수 없이 미국에 계속 거주하게 된다. “내 비록 몸은 조국과 떨어져 있을 지언정 내 피는 조선이오, 내 마음도 조선이오, 내 심장도 조선이라네” 20여년을 모든 재즈음반에 기타를 연주하던 박상권 선생은 수많은 걸출한 제자들 중 하나 루이 암스트롱에게 말했다. “이암아 너는 재주를 무어라 생각하느냐?” 루이암은 답했다. “기술이 아닙니까?” 박상권 선생이 말했다. “아니다. 조국을 잃은 슬픔이니라” 흑인들은 같은 심정을 느꼈으리라. 나라 잃은 슬픔을, 가지 못하는 그 고향을 1945년 8월 15일 하루가 매일같던, 마음 깊이 웃어본적, 울어본적 없던 박상권 선생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대한독립만세...” 조국에 대한 사랑이란 이런걸까, 이렇게 사랑할수도 있는걸까.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아리송한 우리네 이야기 [Credit] 녹음 - 이성록,류호건(타디스녹음실) 믹싱 - 류호건(타디스녹음실), 멋진인생 마스터링 - Greg hartunian 앨범 커버 - 김형원 사진촬영 - 김세민(도다리 사진관) 그 외 나머지 - 멋진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