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을 내

기분을 내

쉴 틈 없는 일상 속에서 뻥 뚫린 도로 위를 달리는 경험을 선사하는 광주에서부터 온 여유로움. '이글라프(Eglaf)'는 광주의 음악가다. 굳이 지역명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 안에는 광주라는 지역의 특수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자생을 시도했지만, 사실상 실패를 맞이하고 서울로 올라간 수많은 로컬(지방)의 음악가들. 광주는 아직도 '로컬 씬'이라는 환상 아닌 환상을 좇는 유일한 지역이다. 광주의 지역 번호 '062'에서 착안한 오식스투(OSIXTWO)는 어느새 광주를 대표하는 무브먼트로 자리 잡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음악과 파티, 머천다이즈를 생산 및 판매하며 한국 로컬이라는 환상을 현실로 바꿔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정말로 서울과 구분 가능한 씬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지역만의 색채를 선보여야만 한다. 그 주체는 결국 음악가와 음악이다. '이글라프'의 첫 싱글, "기분을 내"는 지역만의 색채를 엿볼 수 있는 곡이다. 곡의 내용은 '이글라프'가 기분을 내기 위해 하는 일을 나열하는 문장의 연속이다. 가사 속 행위들은 '이글라프'가 광주에서 보고 느낀 것들인 만큼, 기분을 내기 위해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나가기 전 방 안의 신발을 세는 행위가 될 수도, 한적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일 수도 있다. 동시에 그가 전시하는 배경들은 미디어를 통해 경험한 '한적하고 여유로운 삶'의 재현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미디어에서 본 것처럼 달리는 차의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기를 꿈꾸지만, 서울에서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달릴 수 있는 오픈카'를 타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글라프'는 곡 안에서 이러한 일들이 가능함을 제시한다. 이러한 맥락을 거쳐 "기분을 내"는 듣는 이에게 익숙하면서도, 일상과는 다른 기분과 경험을 선사하는 곡으로 변모한다. '이글라프'의 랩은 이를 멋들어지고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곡 안에서 화려함이나 공격성을 배제한 채 오직 편안한 감상을 유도한다. 마치 대화하는 듯한 구어체는 곡이 가진 분위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랩이라는 포맷이 주는 느낌은 놓치지 않는다. '이글라프'와 마찬가지로 광주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 '언씽커블(UNSINKABLE)'이 만든 비트 또한, 8~90년대 경제 호황기 시절 일본의 음악에 담긴 여유로움을 연상케 한다. '여유로움'이라는 측면에서 이보다 잘 어울리는 프로덕션을 찾기란 어렵다. 재미있게도 곡 안에 앞서 말한 맥락들이 담기면서 "기분을 내"는 여러모로 일반적인 한국 힙합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이글라프'는 곡 안에서 소비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절대 한국 힙합에 만연한 과시적 소비주의는 아니다. 허슬(Hustle)이란 단어로 이해되는 숨 가쁜 삶 또한 "기분을 내"에서는 경험할 수 없으며, 유행하는 트랩 사운드와도 거리가 멀다. 뭐, 어려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아마도 '이글라프'가 원하는 감상은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우선 긴장을 풀고 침대, 카시트, 암체어, 없다면 바닥에라도 몸을 기대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기분을 내"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글 ㅣ 심은보(GDB) - 힙합엘이, 비슬라 매거진 에디터

기분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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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틈 없는 일상 속에서 뻥 뚫린 도로 위를 달리는 경험을 선사하는 광주에서부터 온 여유로움. '이글라프(Eglaf)'는 광주의 음악가다. 굳이 지역명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 안에는 광주라는 지역의 특수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자생을 시도했지만, 사실상 실패를 맞이하고 서울로 올라간 수많은 로컬(지방)의 음악가들. 광주는 아직도 '로컬 씬'이라는 환상 아닌 환상을 좇는 유일한 지역이다. 광주의 지역 번호 '062'에서 착안한 오식스투(OSIXTWO)는 어느새 광주를 대표하는 무브먼트로 자리 잡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음악과 파티, 머천다이즈를 생산 및 판매하며 한국 로컬이라는 환상을 현실로 바꿔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정말로 서울과 구분 가능한 씬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지역만의 색채를 선보여야만 한다. 그 주체는 결국 음악가와 음악이다. '이글라프'의 첫 싱글, "기분을 내"는 지역만의 색채를 엿볼 수 있는 곡이다. 곡의 내용은 '이글라프'가 기분을 내기 위해 하는 일을 나열하는 문장의 연속이다. 가사 속 행위들은 '이글라프'가 광주에서 보고 느낀 것들인 만큼, 기분을 내기 위해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나가기 전 방 안의 신발을 세는 행위가 될 수도, 한적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일 수도 있다. 동시에 그가 전시하는 배경들은 미디어를 통해 경험한 '한적하고 여유로운 삶'의 재현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미디어에서 본 것처럼 달리는 차의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기를 꿈꾸지만, 서울에서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달릴 수 있는 오픈카'를 타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글라프'는 곡 안에서 이러한 일들이 가능함을 제시한다. 이러한 맥락을 거쳐 "기분을 내"는 듣는 이에게 익숙하면서도, 일상과는 다른 기분과 경험을 선사하는 곡으로 변모한다. '이글라프'의 랩은 이를 멋들어지고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곡 안에서 화려함이나 공격성을 배제한 채 오직 편안한 감상을 유도한다. 마치 대화하는 듯한 구어체는 곡이 가진 분위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랩이라는 포맷이 주는 느낌은 놓치지 않는다. '이글라프'와 마찬가지로 광주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 '언씽커블(UNSINKABLE)'이 만든 비트 또한, 8~90년대 경제 호황기 시절 일본의 음악에 담긴 여유로움을 연상케 한다. '여유로움'이라는 측면에서 이보다 잘 어울리는 프로덕션을 찾기란 어렵다. 재미있게도 곡 안에 앞서 말한 맥락들이 담기면서 "기분을 내"는 여러모로 일반적인 한국 힙합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이글라프'는 곡 안에서 소비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절대 한국 힙합에 만연한 과시적 소비주의는 아니다. 허슬(Hustle)이란 단어로 이해되는 숨 가쁜 삶 또한 "기분을 내"에서는 경험할 수 없으며, 유행하는 트랩 사운드와도 거리가 멀다. 뭐, 어려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아마도 '이글라프'가 원하는 감상은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우선 긴장을 풀고 침대, 카시트, 암체어, 없다면 바닥에라도 몸을 기대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기분을 내"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글 ㅣ 심은보(GDB) - 힙합엘이, 비슬라 매거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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