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코앞에 와있는 겨울이었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인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니 너무 멀리 왔더군요. 저는 복싱 선수였습니다. 전역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온 힘을 다해 닿으려 애써왔던 꿈이 무너졌습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 땀 흘려왔던 체육관에서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새벽에 청소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차라리 홀가분한 맘으로 떠나면 될 걸 샌드백을 닦고, 물걸레질을 하고, 땀 자국을 지우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그건 아마도 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지난날에 대한 미련이었나 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미련은 의미 없는 미움이 되어갔어요. 여태껏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고요. 힘들어도 안 힘들다, 슬퍼도 안 슬프다 했어요. 근데 하루는 정말 힘들다고 할 힘도 없이 힘들더군요. 그래서 하던 걸 멈추고 마음껏 지쳐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어요. "아직 지치지 마" 그 순간 힘이 솟구쳤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나니 그제야 응어리진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